본문/내용
꽃뱀이라는 <존재의 거울>에 비춰진 원죄적 업고의 극복과 대지성에 관한 모순의 화해를 추구하던 서정주의 시적 애스프리는 이러한 복합적 고뇌와 갈등이 내면적으로 팽창하여 마침내 시인 자신의 생명속으로 넘쳐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팽창의 병증법에 따르는 생명의 원리는 보다 적극적인 행위를 초래한다. <물어 뜯는> <더욱 원통히 물어 뜯는> 자학적 생명의 해체에 의한 운명의 극복자세에 만족할 수 없다는 서정주는 반작용적으로 자기 해방의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자기해방의 열렬한 욕구는 뱀을 쫓는 행위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하는 적극적 추방 행위는 사실 존재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본질적 허무의 발견과 그 극복 노력임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허무 쪽으로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자조에서 자각으로 발전한 서정주는 다시 자탄으로 빠지게 되고 마침내는 스스로 고통을 이끌어오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보들레르의 경우처럼, 서정주는 고통을 이끌어 오려고 노력한 것이다. 서정주 스스로 격렬히 고뇌하고 방황하는 것에 의해 자신의 운명성과 그에 따른 허무를 극복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서정주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부딪쳐 방법과 관능인 <사향 방초ㅅ길>로 투신하고 만다. 또는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와 같이 이러한 운명과 허무와의 대결에서 패배하고는 원죄적 현실 도피를 기도한다. 존재의 원형을 탐구하고 운명성을 극복하기 위해 내면화하던 서정주는 <석유 먹은듯, 석유 먹은듯> 초조히 현실로 회귀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서정주의 실존적 한계는 바로 서정주 초기의 시적 능력의 한계와 통하지만, 또한 불안의 센티메틸리즘이 풍미했던 1930년대의 현실적 압력에도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