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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대원군의 집권이전(勢道政治期)의 쇄국정책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조선 조정은 철저한 ‘사대외교’노선을 고수했다. 조공·책봉과 같은 전통적인 외교관계의 지속은 물론이고, 자칫 중국과의 마찰을 빚을 수도 있는 문제(예, 주문모 처형사건)등도 빠짐없이 보고하였으며, 이양선의 출현 및 그들의 요구사항(교역이나 선교)에 대해서도 충실히 보고하였다. 이 때문에 중국 황제로부터 “조선은 바깥의 번방이 있으면서 부지런히 제후의 도리를 삼가 다한다”는 칭찬을 듣는가 하면, “예교수번, 예교를 잘아는 편안한 번국”이라는 친필 휘호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조선의 국왕과 신료들은 매년 황단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으며,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재조해 준 은혜를 회상하면서 이여송의 봉사손을 녹용하는 등 숭명론을 고취시켜 나갔다. 청나라의 앞선 문물과 정치·군사적인 힘을 믿고 그것에 의지하면서도 명나라의 정통성 존중이라는 종래의 국시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북학시대의 숭명론’). 이러한 이중적 태도로 인해 순조 초반부까지만 해도 조선은 ‘이념적 사대’가 아닌 ‘전략적 사대’를 지속시킬 수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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