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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장보고의 출생부터 생각해 보면 그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지 100여 년이 지났을 무렵인 8세기 말 통일신라시대에 완도 부근의 한 섬에서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 당시 신라에는 골품제라는 엄격한 신분제도 있어서 백제계나 고구려 계는 출세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장보고는 원래는 궁복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그 당시 기회의 땅이라 생각됐던 당나라로 건너가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장보고란 중국식 이름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식 이름을 쓰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당에서 활동하던 장보고는 해적에게 잡혀온 신라의 양민이 노예로 매매되는 참상을 접한 후 이의 근절을 위해 귀국을 결심한다. 독실한 불교도로서 이국땅에 오래 살았던 그에게는 민족주의적, 인본주의적 면모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당시에는 신라의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약탈과 인신매매를 하던 해적들이 많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평소에는 무역에 종사하는 인물들이 이었지만, 무역길이 막히면 해적이 됐던 집단 들이였다. 당과 신라가가 이들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회유책도 써보고 강경책을 시행하기도 했지만 이들을 통제할 강력한 무력이 존재하기 않아 여의치 않았다.
이때 비로써 장보고의 가장 큰 업적과 이것으로 인해 신라사회에 여러 가지 영향을 비쳤던 ‘청해진’이 설치된다. 장보고는 당시 천연 요새로 여겨졌던 완도에 세워진 청해진에 대사로 임명된 후 해적을 소탕하고 국가 간의 무역을 장려함으로 동북아 해상을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