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일제식민지하의 토막민촌
1920년대 이후 일제의 농촌수탈로 시작된 이촌향도는 1930년대 급속한 공업화에 의해 가세하면서 대규모 무주택자 등장하였다. 이들은 행랑살이라는 일종의 ‘문간 셋방’이 있었고 이를 구하지 못한 영세유입민들은 무허가 임시거처를 마련하여 모여 살게 된 토막민촌은 아현동, 신당동 등 당시의 교외지역에 집단부락을 형성하여 날품팔이, 인부, 직공, 행상 등 육체적 노동에 종사하였다. 또한 토막민촉의 출현은 도시빈민의 형성과 불량촌의 출현과 맥을 같이 했다.
2. 8·15와 6·25이후 판자촌
독립후 해외거주민의 환국, 전쟁중 북한주민의 남하, 1945년 농지개혁법의 시행으로 지주층의 향도 등으로 서울의 인구증가가 재촉되었으며 1943년 40.3%에 불과하던 서울의 주택부족률이 1955년에는 50.2%로 증가 하였다. 구릉사면과 하천변 등에 무허가 불법정착지구가 형성되면서 1950년대 말 서울시는 재정착사업 추진되었다. 기존 불량주거지를 철거하면서 다른 곳에 이주시키는 무허가 판자집의 장소적 이동정책으로 미아리 정착지사업 등이 있다.
3. 달동네와 산동네
1960년대 들어 한국의 근대화 전략에 따라 급격한 도시화를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