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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1794년부터 10년 계획으로 갑자년(1804)을 바라보는 장기적 정국구상 위에 화성 신도시 건설이라는 야심찬 사업을 준비하였다. 정조는 자신의 주도로 조선의 국력을 기울여 한양에 비견할 만한 신도시 건설 사업을 벌이고, 화성에 장용영의 막강한 군사력과 상당한 재화를 축적하여 미래를 대비하였다. 정조는 현륭원 외곽 수원에 대도회를 건설하여 장차 갑자년에 왕세자가 15세 성년(成年)이 되면 그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가서 노후를 보내고자 하는 뜻을 갖게 된다. 화성은 사도세자의 산소가 있어 정조로서는 선산이 있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되었고, 더욱이 노후에 상왕으로서 신료 및 백성들과 함께 살 곳이었다. 상왕의 거처이자 행정시설로서 기능적으로 설계되어 건설된 화성 행궁의 규모는 6백 칸에 달하는 유례없이 거창한 것이었으며, 이를 옹위하기 위한 군사시설로서 화성성곽도 6㎞에 달하는 웅대한 규모에 첨단시설을 갖춘 것으로 계획되어 건설되었다.
17세기 임진왜란 후 두드러진 양반 사회의 모순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적 대응책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중에 반계 유형원이 있었다. 그는…
참고문헌
1. 유봉학,『정조시대 화성 신도시 건설, 백산서당』, 2001
2. 김동욱,『실학정신으로 세운 조선의 신도시 수원화성』, 돌베개, 2002
3. 정옥자,『정조시대 사상과 문화―정조시대 연구총론』, 돌베개,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