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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사람을 시켜 당나라 사신을 쫓아가서 빼앗아다 우물에 놓아주고 다시 살게 하였는데, 그 뒤부터 삼룡변어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석등·대석과 많은 초석들이 남아 있으며, 1974년의 발굴조사에서 금동보살입상과 귀면와, 신라 및 고려시대의 와당 등이 발견되었다.
위의 글처럼 아마도 분황사에 대해서 대략적이나마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한번 더 이 분황사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지금은 작은 절로 남아 있지만 이 절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얽힌 곳도 없을 것이다. 분황사는 내게 경주를 돌아보는 즐거움을 가져다 준 곳이기도 하다. 처음 분황사를 찾았을 땐, 분황사는 모전석탑이 있는 절이었고 원효대사가 살았던 절일 뿐이었다. 분황사는 황룡사 절터 바로 옆에 있다. 때문에 황룡사 절터를 모르는 사람들은 분황사 입구 앞에 놓인 두개의 길다란 돌덩이를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 길다란 돌덩이는 세워져 있을뿐더러 중간엔 세 개의 구멍이 나있으니 이상함이 당연할 것이다. 이것은 사실 분황사의 물건이 아니다. 이것은 앞에 있는 황룡사의 당간지주인 것이다. 옛날에는 그곳에 절이 있음을 알리는 높다란 깃발을 세웠다는데, 그 깃발 받침대를 당간지주라고 일컬었다. 이 당간지주를 한번 쓱 보고서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서 분황사 안에 들어가자. 안에 들어가면 3층 짜리 탑이 있다.
이 탑은 안산암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높이 9.3미터의 모전 석탑이다. 원래는 7층 또는 9층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지금은 허물어져 3층만 남아있는 탑인 것이다. 이 분황사의 탑이 가지는 의의는 탑의 변천사를 보여준다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