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820년 헌종이 죽고 목종이 즉위하자 백거이는 낭중이 되어 중앙으로 복귀했고, 이어 중서사인의 직책에 올라 조칙 제작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는 이 같은 천자의 배려에 감격하여 국가의 이념을 천명하는 데 진력했다. 822년 이후 항저우자사·쑤저우자사를 역임했다. 뤄양으로 돌아온 뒤에는 비서감·형부시랑·하남윤 등의 고위직과 태자빈객분사·태자소부분사와 같은 경로직을 거쳤으며, 842년 형부상서를 끝으로 관직에서 은퇴했다. 한림학사 시절의 동료 5명은 모두 재상이 되었으나 백거이는 스스로 `어옹`이라 칭하며 만족해했다. 이같은 성실하고 신중한 태도로 인해 그는 정계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다.
2. 백거이의 문학세계
백거이는 문학 창작을 삶의 보람으로 여겼다. 그가 지은 작품의 수는 대략 3,840편이라고 하는데, 문학 작가와 작품의 수가 크게 증가한 중당시대라 하더라도 이같이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그의 작품은 형식이 다양하여 고체시·금체시·악부·가행·부(賦)의 시가에서부터, 지명·제문·찬(贊)·기(記)·게(偈)·서(序)·제고(制誥)·조칙·주장·책(策)·판(判)·서간의 산문작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