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청계천의 복원
2003년 7월1일 기공식과 함께 청계천의 복원이 시작되었다. 친환경적인 도시를재건한다는 목표아래 약 2년의 공사의 막이올랐다. 새만금과 같은 결과가 나올것이라는 반대의 의견도 높았고, 서울시민을 위해 꼭 필요한 공사라는 찬성의 의견도 높았다. 그러나, 공사는 이미시작되었고, 이제 문제는 어떡해 청계천을 정말 살아있는 하천으로 만들것인지와 청계천 주변상권의 보호와 주변사람들의 생계에대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 이제 그 성공적인 결말을 위하여 모두가 노력하여야 할 때라 생각한다. 여기서는 청계천 복원사업을 평가하고 그 환경법적인 문제들을 논하고자 한다.
2.청계천의 역사
청계천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으로 서울의 서북쪽에 위치한 인왕산과 북악의 남쪽 기슭,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연장 10.92km의 도시 하천이다.
청계천 유역은 총 면적 50.96㎢로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1394년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후 도성 안을 지리적으로 구분했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구분하는 상징적인 경계선으로 …
서 경관면이나 위생면에서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 개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은 `복개`였다. 개천을 복개하려는 최초의 계획이 수립된 것은 대한제국기의 일이었다. 1895년 내부령 제9호로 종로 가가의 철거와 도로확장계획이 발표되었고 곧 종로에 전차부설공사가 시작되었다.
1909년에 황토형 절개공사로 얻어진 토사를 이용하여 황토현 구간 일부를 메운 일이 있었지만 이것이 청계천의 본격적인 복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청계천을 복개하여 그 터를 이용하려는 계획은 1926년에도 수립되었다. 대광교에서 주교정까지를 철근 콘크리트로 덮어서 1만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이 곳에 택지와 상가 위락시설을 조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청계천을 복개할 경우 홍수시에 배수가 곤란하다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기각되었다.
청계천 처리 문제가 본격적으로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1931년 이후 일제가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으로 치달으면서 조선을 대륙병참기지로 설정하고 경성을 그 중심에 놓으면서부터였다. 이른바 `대경성 계획`이라는 것이었는데 1934년의 시가지 계획령을 계기로 서울의 전반적 개조에 대한 구상이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청계천의 전면 복개 구상은 1935년 최초로 발표되었다. 당시 경성부의 마치다 토목과장은 청계천을 전면 복개하여 도로로 만들고 그 위로 고가철도를 놓는 구상을 발표했다. 대경성 계획으로 영등포를 비롯한 1군8면이 새로 경성에 편입될 경우 당시의 시설만으로는 늘어나는 교통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민간의 교통수단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된 것은 군부의 교통수요였다. 용산, 영등포 공업지대에서 생산되는 군수물자를 만주로 신속히 이송하기 위해서는 경성-의주간, 또는 경성-원산 간 도로와 철도의 보완이 필요했고 토지수용비가 필요없는 청계천을 새로운 도로, 철도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구상은 재정 문제를 내세운 조선 철도국의 거부로 좌절되었다.
1936년에는 광교와 삼각정 사이를 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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