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세상에 다소 정에 어긋나고 이치에 벅어나며 남을 속이는 것과 예측하기 어려운 인사는 다소 있는데 이것에 대해 논한 것은 없는데, 우리는 인성이 항상 가지고 있는 일관된 정조와 이치에 대한 진리를 심각하게 믿는 데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결과로 우리들은 인성은 항상 일관된 정조와 이치라는 것을 긍정할 수 없고, 우리들의 인간과 비인간의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해 확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맹자는 말하기를 .. [인간이 금수와 다른 바는 적다.]고 했다. 이 구절에는 실로 큰 지혜가 존재해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 되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그 [적은 것(기희)]의 하나의 사소한 정조와 이치를 취하는데 있다. 이런 사소한 정조와 이치를 가지면 인간이 된다. 이런 사소한 정조와 이치를 갖고 있지 못하면 인간이 아니다. 맹자는 또 말하기를 ..[신체에는 귀천이 있고, 대소가 있으며, 적은 것으로 큰 것을 해하는 것은 없고, 천한 것이 귀한 것을 해하는 것도 없다. 그 작은 것을 기르면 소인이 되고, 그 큰 것을 기르면 대인이 된다.] 맹자가 말하는 바의 체는 일반적 인성을 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지 인성이라는 것이 인성이 되는 것은 즉 커다란 부분이 그 귀함을 갖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고, 이는 그 작은 부분이 천함을 가지고 있음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인성의 소체를 보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없다. 다만 인성의 대체를 보면, 인간은 즉 금수와 같지 않다. 인간이 만약 그 대체를 기르면, 인간은 천과 통하고 땅과 통할 수 있으며, 아울러 소체를 사용해서 대체를 해할 수는 없다. 이는 [먼저 그 큰 것을 세우면, 적은 것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사이다. 위에서 나타난 것처럼, 우리들은 인성 철학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 하지 않았고, 인성에 대한 말하는 것은 중요한데, 인성의 대체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 필수이다.
인성의 대체를 살펴보면, 나는 인성은 이미 갖추어진 진리라고 생각되며, 한층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