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잡과 교육은 대체로 고려 말의 잡과 교육을 답습하여 정비하였다. 조선의 기술 교육의 제도는 태조 2년에 고려의 십학제도와 중국의 주제(周制)를 모방하여 병학(兵學), 율학(律學), 자학(字學), 역학(譯學), 의학(醫學), 산학(算學)의 육학(六學)을 설치하였다. 이것은 태조 6년에 무학(武學), 이학(吏學), 역학(譯學), 음양(陰陽), 풍수학(風水學), 의학(醫學), 자학(字學), 율학(律學), 악학(樂學)으로 확대되었다.
조선의 기술교육이 제도적으로 정착되는 것은 성종 때의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의 생도조(生徒條)에서 각 학교의 생도를 법적으로 명시한 데서 비롯된다. 생도조에서는 유학 교육 기관인 성균관과 사학의 인원을 명시하고, 기술 교육 기관의 생도의 정원을 명시하였다. 기술 교육 기관은 중앙 기관과 지방 기관이 있었다.
나) 잡과 교육의 형태
1) 역과교육(譯科敎育 : 外國語敎育)
역과는 외국과의 교류에 필요한 통역관을 양성하는 교육이다. 역과에서 교육하는 외국어는 한학(漢學 : 중국어), 몽학(蒙學 : 몽고어), 여진학(女眞學 : 청학), 왜학(倭學 : 일본학)으로 대별되어진다. 이와 같은 외국어는 사역원(司譯院)을 중심으로 하여 필요한 해당 지방 관아에서 필요한 인원을 양성하였다.
그리고 외국과의 교류가 필요한 지방에서도 해당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였다. 한학은 평양, 의주, 황주에서 역학 훈도를 두었고, 학생은 각 30명이었다. 여진학은 해당 지방에 역학 훈도를 두었고, 역학은 의주(義州) 5명, 창성(昌城) 5명, 북청(北靑) 10명, 그리고 이산, 벽동, 위원, 만포가 각 5명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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