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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왕조의 문화
중국 『사기』에 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제요(帝堯)⦁제순(帝舜)의 다섯 황제가 사적이 기록되어 있고, 그 후 황하 치수에 공이 있는 우(禹)가 하왕조(夏王朝)를 열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증명할 사료가 없어 전설로 여겨지고 있다. 은 또한 전설로 판단되다가 1899년 갑골문자의 해독이 시작되고 1929년 이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어 은왕조의 실재가 밝혀지게 되었고 중국의 첫 왕조로 여겨지고 있다. 은왕조는 3기로 구분되지만 전 중기에 대해 『사기』에 실려 있는 왕의 계통과 유적, 그 출토품 이외의 사료는 없다. 후기에 이르러 은대 사회의 구조, 왕제의 실체에 대해 알려주는 사료는 약간 있다.
그 첫 번째가 갑골문자이다. 귀갑과 수골의 표면에 기록된 복사(卜辭)인데 정인(貞人)이라는 복관(卜官)이 외정(外征)의 성패 작물의 풍흉, 수렵의 다과 등을 점칠 때 기록된 글이다. 두 번째는 금문(金文)이다. 금문은 청동기에 새겨진 문자이다. 즉 왕으로부터 상을 받은 족장이 왕의 조선을 제사지내는 제기인 청동기를 만들고 그 표면에 제기를 만든 경위를 새긴 글이다. 세 번째는 …
참고문헌
<서병국, (2005년), 아시아의 역사, 한국학술정보(주)>
<두산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