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영화를 월요일에 봤는데 그 때는 이 영화의 역사적 상황을 수업하기 전이었다.
그냥 막연히 교수님께서 보라고 하셨기 때문에 봤는데, 처음엔 참 어리둥절하였다. 왜냐하면 이런 영화인지 전혀 생각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줄곧 어두운 화면 처리에 끔찍한 장면이 계속 연이어 나왔다. 그러나 그 후에 수요일에 수업을 한 후 이 영화의 역사적 상황과 역사적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수요일에 수업을 들을 땐 이 영화를 본 후였기 때문에 더 깊이 잘 다가왔다.
이 영화의 역사적 사실을 간단하게 요약 해 보았다.
위그노의 세력이 커지자, 까뜨린느는 위그노 지도자 콜리니를 암살하고자 하였다. 살인 계획이 폭로되자, 위그노들이 정부에 진상 조사를 요구하여 까뜨린느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위그노에게 사과하거나 그들의 세력을 뿌리채 뽑아내는 것 뿐이었다. 까뜨린느는 꼴리니 만이 아니라 모든 위그노들을 처치할 음모를 세우게 되었다.
까뜨린느는 그의 딸 마고와 개혁 교회의 지도자 나바르의 앙리를 결혼시킴으로 음모를 실천에 옮겼다. 두 사람의 결혼이 선포되자, 로마 천주교인들과 개혁교회의 교인을 막론하고, 모든 프랑스 사람들은 내란이 끝나고 평화의 시기가 올 것을 예견하였다. 종교 전쟁의 종식을 기대하는 수많은 인파가 결혼 축하를 위하여 몰려들었으나, 축하연이 거의 끝나 갈 무렵 살해 극이 시작되었다. 까뜨린느가 샤를르 9세에게 1572년 8월 24일 바돌로뮤 축제일 밤에 생 제르멩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하여 모든 위그노를 살해하도록 명하므로 위그노에 대한 대대적인 살육이 시작되었다.
살인자들은 교회당 주변을 포위하여 결혼 축하 예배에 참석하였던 사람들을 전멸하였다. 꼴리니를 비롯하여 약 30,000명에서 70,000명의 위그노들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이로서 성경 중심적인 개혁운동을 벌이던 위그노의 개혁 운동은 기가 꺽였으나, 원수들은 축재를 높이 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