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우선, 필자는 훈족 연합체를 설명하면서 고트 족, 반달 족, 프랑크 족, 심지어는 로마인 할 것 없이 우수한 전사라면 누구나 훈 족의 계급질서 내에서 빨리 출세 할 수 있었다는 점과 중앙 지배층 내에서의 다종족주의를 들어 대 이동시기에 종족 정체성이 얼마나 깨지기 쉬웠고 탄력적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원적인 문화적, 종교적 전통을 가진 로마의 모습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발견할 수 있는데, 로마의 중앙정부는 지방 유력자들에게 배타적으로 로마의 가치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자연스레 로마의 전통에 동화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성향을 들어 훈족 연합체의 타 종족에 대한 개방성과, 로마의 다원적인 사고방식을 종족 정체성의 분열로 파악했다. 하지만 ‘본래 가진 진짜 모습’ 이라는 뜻의 정체성을, 고정적이고 비탄력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 대신에, 그러한 개방성과 다원성 그 자체를 그들 나름의 정체성의 한 형태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훈족 연합체의 경우를 예로 들어 그들이 타 종족을 자신들에 동화시킬 때, 그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뛰어난 전사들만을 받아들였던 점을 보아도, 훈족이 아무런 기준 없이 타 종족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기준 내에서의 다원성을 그들의 정체성으로 파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