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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 사고방식을 벗어나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키우면서도 서로에게 무관심해진다는 부분이었다. 나는 황혼이온의 사유에 그동안은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못했고, 아이들이 다 자랐으니까 이혼을 하는 것이라고 들어왔었다. 그런데, 아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 할 수 없었다니!!아마 동서양의 문화적인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동양의 어머니들은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이혼을 하고 싶어도 자녀들이 방황을 할 지도 모른다는 염려로 인해 참고 사는 반면에 서양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이야기에서는 자녀를 통해서 서로 형식적인 관계로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이 둘 또한 서로를 성 적인 관계로만 여겼던 것을 벗어나서 개개인을 하나의 존재로 보았다는 점에서 현실극복의 의지가 보인다.
스크래빈스키와 어슐라의 이야기에서 스크래빈스키는 안타깝게도 현실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없고, 벗어나려고만 했다. 여성의 지위도 충분히 상승될 수 있었던 것인데, 그는 애나의 그런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고 심지어 다른 여자를 찾아 결혼하는 행동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