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사실 이 이야기에서 모든 비극의 결정체는 김약국이다. 그는 다섯 딸들의 비극을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이미 그 오래전 비극의 시초인 어머니의 죽음도 겪었다. 근대화의 흐름을 타고 거대한 자본가로 거듭나기 위하여 벌인 어장사업은 보기 좋게 망한데다가, 여러 번 떠나려 시도했던 통영은 떠나지 못한 채로 암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그는 그의 뜻대로 살았던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러한 김약국에 대한 연민이 생겼는데, 이러한 비극을 겪어나가면서 아버지로써, 아들로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의 속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김약국네와는 다른 삶이 존재한다. 김약국의 고종사촌형 이중구는 가난한 집안 탓에 소목 일을 하지만, 기상이 꼿꼿한 사람이다. 한일합방 전후로 어지러운 세상과 마주한 그는 그 당당한 조선의 선비 기상을 바탕으로 책을 덮어버렸다. 그의 이치에 어긋나고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강건한 성격은 유약한 김약국과는 사뭇 대조되는 것이다. 또 다른 인물로는 사위인 기두를 예로 들 수 있다. 기두는 성실하고 대담하며 통솔력이 강해 김약국의 신임을 전적으로 받는 사내다. 그는 바다와 싸워 앞으로 닥칠 현실에 적응하고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심지와 지식과 야심의 소유자다. 김약국이 싸워 지고 말았던 그 바다를 그는 언제든지 대항하여 싸워 이겨낼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