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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서술했듯이 단재 신채호와 김철준은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한 이후로 전통의 맥이 끊기고 유교적 사대주의,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삼국사기』에는 사대적 성격과 전통에 대한 체질을 부인하는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는 것이다. 이규보의 『동명왕편』과 『삼국사기』고구려본기 동명신화를 비교해 보면, 당시의 상황을 짐작 할 수 있는 신화들이 삭제되었으며, 또한 『삼국유사』 지철로왕조와 비교해 보면 당시의 팰리시즘에서 나온 표현을 『삼국사기』에는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삼국사기』에서는 고대의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교적 사유방식에 합당한 모습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고병익은『동명왕편』과 『삼국사기』를 비교해 보았을 때 원형을 많이 남겼다고 하면서 백제·신라의 시조설화에도 이러한 원형이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또한 거서간 등의 왕호를 개칭할 필요가 없다는 논찬, 신라 관호로서 이벌찬·이찬 등이 모두 이언이며 그 원어의 뜻을 알지 못하면서도 모두 수록해야 한다는 태도, 백제본기말 본기 전체의 말리에 실려 있는 논찬에 「황당지사로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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