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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씨는 ‘손님’에서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우리나라에 들어온 손님이라고 규정했다. 즉,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와 분단을 거치는 동안에 외세로부터 받아들인 종교 및 사상이다. 황석영씨는 중세의 조선 민중들이 천연두를 ‘마마’ 또는 ‘손님’이라고 불렀다는 데 착안하여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손님’으로 규정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황석영씨의 기독교와 맑스주의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알 수 있다.
황석영씨는 신천양민학살의 본질을, 미군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해방 당시 우리나라 내부의 두 세력-기독교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충돌로 보고 있다. 이 두 세력은 세력의 형성 및 발전 초기부터 그 대립과 충돌을 예고했다. “기독교 지도자라는 사람치고 지주집안 아닌 사람이 있냐 말이야.”란 순남아저씨의 토로로부터 이미 당시의 두 세력의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갈등이 존재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교육적 측면에 있어서도 두 세력간에는 갈등이 존재하였다. 북한당국은 1947년 말부터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립학교를 몰수하여 사회주의적 공교육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신학교를 제외한 어떤 학교도 교회가 운영하지 못하도록 몰수하였다. 모든 기독교 신학교에 대해서도 김일성 초상화를 교실정면에 게시하고, 인민과목을 매주 2시간 이상 강의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