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마치 파우스트 스스로 자신의 업적들이 무력하다고 통절하게 느끼면서, 지령을 보고 존재의 왜소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우주를 계속 채워나가도 티끌에 불과한 것처럼, 그 절대적 ‘무’ 자체가 되어야 본질에 가깝다고 하겠다. 존재를 철저하게 비운 충만함이라고나 할까, 본질적 진리는 이런 곳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우스트가 나의 결론은 ‘자유도 생명도 그것을 싸워 얻는 자만이 누리는 것이다.’ 하는 것도 본질적인 자연의 눈으로는 궁극적으로는 그럴 필요도 없이 그저 누리면 되는 것이며, 근본적인 진리를 구하는 방법이나 인식의 방향의 잘못이라고 본다. 이런 동양적 개념이 그의 정신이나 이성 속에 부재했다는 사실은 흥미 있는 독자로서 보기에는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파우스트는 절대적 진리라는 개념을 알고, 그를 나름대로 추구했으나 자신의 순간순간의 마음이 떠돌고 들떴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으며, 절대적 본질과 지금의 일련의 행동들은 사실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몰랐다. ‘마음이 미혹한다.’ 는 개념이 그에게 존재하였다면 그의 영혼이 갖은 쓸데없는 괴로움으로 떠돌거나 스스로 괘락의 혼란 속에 물들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