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제까지 말한 모험담, 서사시의 층(層)뒤에 다시 사상저그 상징적, 신비(신화)적인 층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것을 모두 설명한다는 것은 더없이 곤란하다. 최근 어떤 사람은 이에 철학적으로, 어떤 사람은 사회학적으로, 또 어떤 사람은 정시눈석학적으로, 어떤 사람은 종교적으로 접근하려 하고 있어 실로 갖가지 각도에서의 해석이 생겨나고 있다. 그것들은 각각 어떤 진실을 포착했을 것이기는 하나 동시에 제각기 어떠한 말을 억지로 끌어 다 붙여서 조리에 맞추려고 하는 과오를 저지르고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내게는, 이 《백경》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를 단정할 힘 같은 것은 없다. 다만 말해두고 싶은 것은 상징이란<그것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가>가 명확하게 설명 될 수 있는 경우에는 진정한 상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극서은 여기에는 상징성이라 할 문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멜빌의 무의식적인 조작에 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이 해양 모험담, 장대한 서사시에 묘사된 현실 속에 무언지 모르게 상징적인 감영을 주는 힘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기자 없다.
이것을 꿰뚫는 하나의 강은 분명이 흐르고 있다. 번민(煩悶)의 극(極)에서 넓고 유원(悠遠)한 세계를 찾아 나서는 이스마엘 과 야만인 퀴이퀘드와의 결합은 이 작품에 극히 인간적인 따듯함을 부여하면서, 또한 바다는 「,,,신비로운 대약(大洋)은 인류와 자연계의 가득 찬, 창창하게 바닥도 없이 깊은 영혼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