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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만 한민족의 격찬은 절정에 달하였고, 반일 감정을 지닌 중국, 4억의 중국인 또한 환호했다. 하루아침에 우리나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고, 모여 앉기만 하면 윤 의사의 무용담으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윤봉길 의사 일대기 -임중빈 저- 227페이지 참조.
자신의 거사가 바깥에서 이처럼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을 때에 일본 헌병대로 끌려간 윤봉길 의사는 말할 수 없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도 그는 당당하게 모진 고문을 참아내며 배후 세력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으며 한인애국단과 가족들의 안의를 지키려 애썻다. 그 해 5월 25일 윤 의사는 상해 파견군 기자 한 사람 얼씬할 수 없는 극비의 군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는다. 이때 윤의사의 마지막 진술은 이러하다. “나는 동양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하여 침략자를 응징하고자 전장터에 나가 싸우다 포로가 되었을 뿐 아무런 범인도 아니다. 그런 나를 재판할 자격조차 없는 그대들이 극형에 처한다는 것은 무슨 권한인지 모르나 설혹 내 목숨을 빼앗는다 할지라도 내 정신만은 죽이지 못함을 알라. 대한 남아로서 내가 한 일은 역사가 기록할 것이며, 지금 내가 뿌리고 가는 피는 일제 패망의 날 탐스러운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오늘에 있어서 파괴의 무기는 건설의 의로운 깃발이 되리라 믿기에, 나는 지하에서라도 일제가 쇠망하는 날까지 싸움을 쉬지 않으리란 말을 남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