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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경은 늦게 세상에 나온데다 그 유전 또한 상대적으로 세를 얻지 못하고 민간으로 퍼졌기 때문에 서한말까지 대립되는 개념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였다. 줄곧 박사들의 반대로 학관에 서지 못하던 고문경이 금문경과 나란히 그 지위를 다투게 된 것은 유흠의 출현 덕분이다. 고문경학은 서한 말에 이르러 유흠에 의하여 비로소 공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비로 곧 다시 폐하여지고 말았지만 한때나마 학관에 설 수 있었던 근원적인 시초는 그에게 있었다. 그는 고문학의 실질적인 개창자이며 금문학에 대항한 고문학의 관건적인 인물이다.
유흠은 젊은 시절 왕망과 함께 황문랑이 되었고 왕망은 유흠의 학문을 존경하였다. 왕망의 추천으로 애제에게 가까이 갈 수 있었으며 유흠은 고문경을 학관에 세우기 위해 숭상 공광 등을 찾아가 대신들의 지지를 받으려 노력하였다. 청대의 금문파 학자들은 당시 유흠이 고문 경학을 학관에 세우려 한 것이 왕망의 찬탈을 돕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당시 애제가 이미 20대의 나이였고 정권 또한 그의 손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어쨌든 유흠의 수차례에 걸친 건의에도 …
참고문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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