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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참신하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근대를 열어젖힌 걸작’이라는 평을 듣는 ‘열하일기’는 당대에는 “옛 글의 권위를 허물고 선비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문체반정(文體反正)’의 주범으로 몰리기까지 했다. 근대에까지 금서처럼 쉬쉬하며 필사본으로만 떠돌던 ‘열하일기’는 1911년에야 비로소 조선광문회에서 국판 286면 활자본으로 처음 단독 출간됐다.1932년 박영철(朴榮喆)이 6책 활자본으로, 1948년 김성칠(金聖七) 국역본이 정음사(正音社)에서 각각 나왔으며, 1956년 타이완[臺灣]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사본(寫本)을 영인(影印) 출판하였다. 1966년 경희출판사에서 박영철본을 영인, 간행했다. 그밖에 부분적으로 번역한 〈연암선집〉이 있고,완역본은 1968년 민족문화추진회가 발간한 고전국역총서본과 1983년 박영사판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절판돼 구할 수가 없다.한편 연암의 후손에 의하여 최근 <양매시화(楊梅詩話)>가 새로 발견되었는데, 이는 양매서가(楊梅書街)에서 중국의 학자들과 주고받은 한시화(漢詩話)로서, 당시 옮겨 쓰려다가 우연히 누락된 것으로 짐작된다.
열하 일기는 조선시대 한문학 유산 가운데서 근대 지향적인 성격이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