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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폭동과 2.7사건을 거치면서 여러 좌파문인들이 구금되고, 투옥되어 좌파는 그 세력이 위축되게 된다. 이때 임화는 남한에 남아 잠적하면서 문학활동을 포기하는 대신 월북하여 문학활동을 계속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임화의 월북은 1947년 하순으로 추정되는데 그것은 박헌영이 위장조직으로 차린 제일인쇄소에서 임화를 필요로 했지만 임화에게 체포령이 내려지고, 박헌영이 임화의 입북을 명령해 입북한 것이 1947년이기 때문이다. 또한 1947년 2월 열린 문화옹호 남조선 문화예술가 총궐기대회에서 주제 강연의 본론을 대독시킨 것은 임화가 1947년 초에 월북했을 가능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1947년 6월 중순 남쪽의 신문에 작품을 발표한 일이 있기에 1947년 하순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화가 8·15 이후 남한에서 활동한 것은 불과 두 해 반에 남짓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짧은 기간 안에 그는 좌익을 장악하여 한국문단 전체를 쥐고 실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임화는 혼란한 정세 속에서 논쟁과 비평으로 의견이 분분하던 좌익과 우익의 대립을 발빠른 대처와 특유의 기질을 발휘하여 좌익의 통일과 세력의 강화를 추…
참고문헌
※참고자료
김윤식, 임화연구, 문학사상사, 1996
김용직, 임화문학연구, 세계사, 1991
한효, 예술운동의 전망, 예술운동창간호, 1945
송희복, 해방기 문학비평 연구, 문학과 지성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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