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부곡제 주민의 극심한 유망현상은 필연적으로 부곡제의 변질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시기 수취체제의 모순에서 부곡제 변질의 또 하나의 계기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부곡제 집단은 권세가와 토호세력의 탈점, 국가적 수요의 증대에 따른 과중한 수탈 등으로 인하여 해당 주민이 유망하면서 그 고유한 기능이 상실되어 갔다.
부곡제가 탈점이나 과중한 수탈 등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부곡제의 구조적인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먼저 고려의 부곡제는 국가재정의 원천으로서 국가의 직접적인 수취대상이 아니라 국가기관이나 특정기관의 수취와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부곡제는 국가의 직접적인 수취의 대상이었던 군현제에 비해 생산물 수취를 전담하였던 해당기관의 침탈을 받기에 구조적으로 용이한 곳이었다. 특히 고려중기 이후 전시과체제의 붕괴로 상징되는 고려전기 토지체제의 문란은 근본적으로 부곡제의 일환을 이루고 있는 향 부곡과 장 처의 동요와 해체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군현체제의 일원이었던 부곡제는 군현제와 마찬가지로 매년 일정액의 공물을 부담하였다. 그러나 왕조성립 이후 계속된 전쟁, 국가 행정기구의 비…
참고문헌
【참고문헌】
한국중세사학회, 『고려시대사강의』, 도서출판 늘함께, 1997
朴宗基 , 『고려시대 부곡제연구』, 서울대 출판부, 1991
강만길 외, 『한국사-7』, 한길사, 1995
구산우, 『고려시기 부곡제의 연구성과와 과제』, 부산대학교 사학회, 1988
구산우, 『고려전기 향촌지배체제 연구의 현황과 방향』, 부산대학교 사학회, 1999
박은경, 「高麗時代 鄕村社會硏究」 , 일조각,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