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에리카는 아버지가 쓰던 면도칼로 자기 몸을 베는 자해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에서 그녀는 자신을 자해하는 권력자로서, 그리고 고통을 감수하는 순종적인 피지배자로서의 두 가지 자아를 연출한다. 여성적인 자신의 육체를 학대함으로서 남성적이 되어 어머니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에리카는, 다른 한편으로는 학대를 당하는 입장에서 어머니에게 철저하게 종속된 자기 자신을 다시 확인한다. 예리네크는 어머니와 딸의 권력관계를 통해 이러한 지배, 종속 관계가 단지 남녀 간에만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자식나이나 여성들 사이에서도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이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에리카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클레머라는 대학생이 에리카에게 남성으로서 접근해 온다. 집요한 노력 끝에 그는 에라카와 성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하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에라카는 마조히즘적 성향으로 인해 고통 받고 학대당함으로써만 쾌락을 느낄 수 있어서 이성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불가능한 것이다. 에리카는 클레머가 지배적인 남성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그가 할 행위를 미리 편지로 써서 전한다. 그러면서도 내심 클레머가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다정하게 대해주기를 기대하는 이중적, 분열적인 양상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