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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결정적인 두 가지의 제약이 있었다. ‘하나는 일본을 통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상류층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 김윤수, 「한국 현대미술의 반성」, 민족미술협의회, 한겨레, 1988, p.16.
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신무용 역시 일본을 통해서 소개되고 지식인들은 중심으로 해서 공유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지식인들은 관객으로서의 수준을 넘어서 공연평은 물론이고, 향토무용론과 무용진흥론, 무용교육론, 무용론 등을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몇몇 지식인과 상류 지배계층에 의하여 공유되었던 관객 수준의 한계성으로 무용이 일반화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시무용은 최승희나 조택원에 의해서도 나타나듯이 고전의 현대화를 꾀하면서 서양 무용기법을 중심으로 우리의 것은 한국적 소재나 의상 등에 국한시키는 것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즉 우리 춤을 예술화한다는 취지 하에 생활과의 괴리를 유도하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그것은 ‘예술과 현실의 분리’라는 식민 통치에 결합하는 예술관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신무용은 우리가 이전에 가…
참고문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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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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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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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완, 한국춤의 정시은 무엇인가, 『춤』, 198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