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수에마츠와 김상기: 무열왕이 진골이 된 이유를 그의 결혼과 연관시켜 해석. 무열왕의 아내인 김유신의 누이는 귀순한 가야의 왕족이었으므로 이 가문과 결혼한 김춘추는 성골의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규율을 어긴 것이고, 따라서 그도 성골이 될 수 없었다는 것. 나아가 김상기는 선덕 · 진덕 두 여왕이 결혼하지 못한 이유도 당시 성골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석.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무열왕의 아버지인 용춘이 성골이 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음.
-이노우에: 성골 · 진골의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파악. 선덕여왕대의 정치 · 외교 문제가 성골 의식을 촉발시켜 성골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리. 그러나 무열왕이 성골이 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충분하지 못함.
-김철준: 방계와 직계가 골품제의 운영에 중대한 요소라고 보고 신라사회는 7세대의 동일친족집단이 사회편제의 기본단위라는 가설을 제기하였음. 무열왕의 신분이 진골인 이유는 그가 친족집단의 말단에 속해 있었던 까닭에 성골에서 강등된 것으로 봄. 그 근거로 불상 관계의 금석문에 7세부모라는 구절이 많이 보이고, 또 낭혜화상비에 의하면 무열왕의 7세손…
참고문헌
※ 참고문헌
* 이종욱, 『신라 골품제 연구』, 1999, 일조각
* 이기백, 『한국고대사론』, 1988, 한길사
* 서의식,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고조선,삼국)』, 2002
* 이기동,『신라 골품제사회와 화랑도』.1984, 일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