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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그의 애제자인 이서구에게 써 주었던 「록천관집서」나, 조카인 박종선의 시집에 써 준 「릉양시집서」라는 글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연암은 평소 “글에는 고문이나 금문이 따로 없다. 그러므로 모방과 답습을 할 필요가 전혀없는 것이다.” 『과정록(과정록)』하, p41 `선군지론문장야, 상이위문무고무금, 불필모.“
는 신념을 가졌다. 따라서 그는 “현재 쓰고 있는 글[이언]이 모두 이아이다”라고 하거나, 아니면 “서경과 시경에 쓰인 글은 모두 삼대의 시문이요, 이사와 왕의지의 서례는 모두 진과 진의 속필일 뿐이다.”라 단어하기도 하였다. 『연암집』권7, 「우부초서(우부초서)」, 장4 “이언, 개이아야”
결국 「초정집서」에 나타난 연암의 ‘법고’와 ‘창신’의 개념은 엄밀하게 말해 ‘법고’보다는 ‘창신’의 입장에 너무 치우친 박제가의 학문성햐에 대한 충고의 말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연암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자의 한 사람인 박제가나 이서구 그리고 서유본 등의 학문 성향이 앞 시대의 의고주의적 문학경향을 벗어나 자신의 개성을 보다 자유스럽게 표현하려는 개성주의적…
참고문헌
<참고문헌>
1. 구교현, 『중국어문학논집 』제22호 「공안파와 박지원의 문학이론 비교 」, 중국어문학연구회, 2003
2. 오수경, 『한문학연구 』10 「법고창신론의 개념에 대한 검토 :박제가의 `시학론`과 관련하여 」, 계명대학교계명한문학회, 1995
3. 신란수, 『연암소설의 서술기법 연구』, 중앙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중앙대 교육대학원, 1987
4. 송영숙, 『조선후기 시평의 전개양상 : 민족의식을 중심으로』, 단국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단국대 대학원, 1995
5. 문정자, 『이서와 이광사의 예술론 연구』, 단국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단국대 대학원,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