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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5차 총회(1975. 11. 23. - 12. 10. 케냐 나이로비/자유케 하시며 하나 되게 하시는 예 수 그리스도)
인종차별 투쟁사업은 많은 찬사를 받았다. 에큐메니칼운동의 목표인 일치와 관련하여 교회란 ‘진정으로 하나가 된 개 교회들의 협의회적 교제“라 했다. 불교도, 힌두교인, 유대인, 이슬람교도, 시크교에서 손님자격으로 초청되었다. 에큐메니칼은 ’영적 야합‘을 통한 혼합주의로 가고 있다는 인상이 심어지고 있다. 성차별 문제도 거론되었다. 인권 문제에 있어서는 ’침묵지대`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6차 총회가 있기 전까지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속될 수 있는 사회’ 추구가 활동의 주요 핵심사항이었다. MIT에서 ‘과학에 바탕을 둔 기술 세계에 있어서 인간과 사회의 미래’와 관련하여 신학자, 성경학자, 과학자, 학생들이 모여 연구했다. 선진 산업사회가 제3세계에 준 고통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핵무기를 비롯한 군축 문제가 다루어졌다. 이와 관련한 청문회가 1981년 암스텔담에서 있었다. 1980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회의는 사회참여와 복음전도는 병행되어야 함이 강조되었다. 타종교와의 대화는 혼합주의를 낳을 가능성 염려와 함께 논의 되었다. 이와 관련한 지침에서 대화가 기독교 신앙과 삶의 진정성을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인종차별투쟁사업 특별기금(85,000달러)가 무장투쟁(짐바브웨)에 사용된 것에 대한 항의가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 인권자료 사무소가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