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⑴ 훈민정음의 창제
한글의 창제는 통치의 편의를 위한 목적성을 가지고 편찬되었다. 당시 조선은 왕조의 창건과 함께, 효율적으로 백성들에게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한문은 너무 어려워 일반 백성들이 읽고 쓰기에 불편함이 있었다. 한자의 음을 빌려 우리말을 표현하는 이두 또한 마찬가지였다. 또한, 인간의 언어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만물의 이치를 담고 있다는 것이 당시 유학자들의 생각이었는데, 이두는 단순히 한자음을 차용한 것에 불과하였으므로, 이러한 지배층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어려웠다. 또한, 당시의 말과 글의 불일치는 민족 문화의 발달에 장애적 요소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태종대를 거치면서 국력이 신장되고, 민생이 어느정도 안정화되어가던 가운데, 한글이 창제되기에 이르렀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 25년 계해 12월이고, 그 반포는 그보다 3년 뒤인 세종 28년 병인 9월이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기본적으로 조선 초기 학술기구였던 집현전과 세종의 뒷받침 속에서 실현『세종실록』제103권, 세종 26년 음력 2월 20일조에 기록된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 상소문에는 세종의 한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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