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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은 1883년(29세) 보거과(保擧科)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나 시골 출신이라는 불합리한 이유로 차석으로 밀려나 입신출세에 미련을 분연히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부친의 명을 어기지 못해 그의 나이 34세(1888)때 생원시를 보아 일등으로 합격을 하여 서울의 성균관 생원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의 뒤를 이어 청과 일본이 조선 쟁탈전을 벌려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배계층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하였고 권력다툼하기에 눈이 어두울 때였다. 이에 매천은 국가의 정사가 날로 부패해진 상황에서 다시는 서울을 출입치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 연구와 후진교육에 힘쓰는 한편 시문 창작과 역사 저술에 전력하였다.
그러나 매천은 비록 초야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경국제세(經國濟世)에 관심을 갖고 시무와 국가 정세를 이해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성리학의 공리공담에 염증을 느끼고 실용적인 학문 및 현실 문제의 해결에 관심을 두어 시문은 물론 제가백가에 두루 통하였고, 특히 역사·군사·형법·경제 등의 학문에 뜻을 두었다. 이 같은 그의 사상적 연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파에게로 연결된…
참고문헌
◈ 참고문헌
조동일, 『한국문학통사』제4권, 지식산업사, 1999
민족문학사연구소 고전문학분과, 『한국고전문학작가론』, 소명출판, 1998,
임형택,『매천·만해·지훈의 시인의식』, 박영사, 1982
황현, 허경진 옮김, 『매천야록』, 한양출판,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