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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유태인 대학살 그 자체는 비극이다. 유태인을 멸종시키고자 했던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재앙이었다. 그래서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인간은 시를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은 아우슈비츠에서는 신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신의 존재까지 부정되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타부이었다. 아우슈비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타자에게 이해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살아남은 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누군가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은 없고, 그러면 그것은 역사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모든 기억을 사라지게 하는 역사의 `블랙홀`이 되어야 하는가?
유대인은 물론 역사가의 절박한 과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역사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트라우마(trauma)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억압된 기억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는 현실에 대해 직접 말할 수 없을 때, 돌려서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현실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역사보다 우회하여 비틀어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유리하다. 일반적으로 사실의 `노예`가 되는 역사가는 비극적인 과거를 비극적인 역사로 서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허구화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소설가나 영화제작자는 비극적인 내용을 희극적인 형식으로 담아낼 수 있다.
아름다움이란 있을 수 없고 단지 절대 악만이 존재하는 아우슈비츠에서 인생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은 아우슈비츠 문제를 주제로 해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만들어 냈다. 베니니 감독의 탁월함은 비극적인 사건을 희극적인 영화로 만들어 냄으로써 홀로코스트의 진실성을 훼손하지 않고 미학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우슈비츠라는 대재앙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계속 삶을 영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