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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행에는 옮겨지지 않았지만 이승만의 외교가 얼마나 미국에 곤란을 주는지 보여준다. 이승만은 약 27000명의 반공포로를 전격적으로 석방시킴으로 미국에 휴전을 거부하고 파기시킬 의사와 능력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에 미국은 [에버레디 계획]을 다시 고려하는등 했으나, 미국의 로버터슨(당시 미국무성 극동담당차관보)과의 회담에서 상호방위조약의 초안이 교환되는 등 성공적인 회담으로 휴전협정의 진전이 되었다.
어찌되었든 전쟁은 휴전으로 마무리 되었고, 미약한 국력의 한국은 전쟁을 재개할 능력이 되지 못하였다. 이에 이승만은 휴전을 `시한부 휴전“으로 내세워 북진의 재개 가능성을 보임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섬령하고자 하고, 국내적으로는 대중조작적 의미로 이용 하였다.
휴전의 임시성은 불안정하기에 후속적인 회담이 필요했고, 이것이 바로 제네바 정치회담과 상호방위조약 및 합의의사록이다. 제네바회담을 간략히 한다면 휴전협정 제60조에 따라 정치회담 개최를 위한 예비회담이 1953년 10월 26일 판문점에서 시작되었으나 아무 성과 없이 12월 12일 무기휴회에 들어갔다. 이듬해 2월 18일 베를린에서 미·영·불·소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