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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제시한 낙동강 수질 개선 특별법안과 부산시의 안, 기타 법안들이 임시국회에 상정되었지만 임시 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다음 회기로 연기하면서 특별법 제정은 더 뒤로 미루어졌다. 97년 12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위천공단을 둘러싼 갈등을 취임 후 6개월 이내로 매듭짓겠다고 하였지만 6개월의 시한인 98년 8월 26일이 지난 이후에도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하였다. 그 후 중앙정부는 국무총리 산하에 낙동강 수질개선기획단을 설치하여 낙동강 수계 수질개선대책을 협의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99년에 들어서자 2000년 총선을 대비하여 정치인들이 대구-경북 지역에서 위천공단 조기 설립 약속 등을 남발하고, IMF 상황에서 낙후된 지역경제상황을 이용하여 지역정서를 부추기는 정치집회(구미 집회)를 계속 개최하게 되자 위천공단 설립을 둘러싼 지역 갈등은 더욱 더 해법을 찾기 어렵게 보였다. 2000년 9월 현재 낙동강수계 물관리종합대책-낙동강 생명찾기 대장정(시안)-이라는 정책을 통해 해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대책안이 경남 황강 쪽으로 새로운 광역 상수원을 개발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위천공단을 승인하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