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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 평화주의에 안주하고 있던 조선 사회는 16세기 말 일본의 침략으로 크게 혼란에 빠졌다. 침략군은 오랫동안 내전(內戰)을 통해 단련되어 있었는데 비해, 이를 막는 조선군은 전투의 경험이 없었다. 전란 초기 조선의 관군은 쉽게 와해되고 일본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조선은 일본군의 부산 상륙 이후 불과 2개월이 못되는 사이에 서울, 개성, 평양을 이렇다 할 전투 한 번 없이 일본군에게 넘겨주었다. 그 사이에 전국토가 일본군에 유린되어, 백성들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산과 들로 피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군의 국토 유린에 대한 조선의 외교는 명나라의 참전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명나라의 참전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7년에 걸친 외국 군대의 전장터가 되면서 처참한 상황을 겪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침략군을 격퇴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의병활동이 각지에서 일어나 끝내 일본의 침략을 저지시킨다.
1636년 12월, 청군의 침략으로 시작된 병자호란을 맞아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에 들어가 항전을 벌였다. 그러나 척화파(斥和派)와 주화파(主和派) 사이의 논쟁 속에 45일 동안 이어진 조선의 저항은 1637년 1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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