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하이데거는 존재의 개념을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마음씀`이라는 것, 그리고 그 `의미`가 `시간성`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렇다면 세계-내-존재의 전체성인 이 마음씀이란, 하이데거는 이것을 특별히 `현존재의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 말을 나는 나름으로 풀어보기를 `존재`란 `현상`이며, 현상은 `없음` 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눈에 가시화 되고 공간적으로 `있음`으로 자리하며, 내면에는 시공을 넘어 의식화된 `의미`인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나에게 의미를 부여해야 만이 `나`라는 존재가 그 상대방에게 인식되는 것이다. 인식이 차단되거나, 거부당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있어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현상이 될 수 없으며, `아무 것도 아님`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어 나가면서 존재 문제와 함께 줄곧 떠나지 않는 시가 하나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일상에서 그냥 스쳐 가는 사물의 하나인 `꽃`이 자신의 의식 속에서 인식하는 순간, 작가의 공간적, 내면적으로 존재로 자리하게 된 것을 노래하고 있다. 어느 특정의 꽃이 아닌 일반 명사로서의 꽃으로 이름지은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물론 시인의 작업이란 이런 무관심에 관심을 주고 생명을 넣는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