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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진정 궤변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궤변이라는 것은 어떤 확고한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거기에서 어긋난 벗어난 논리로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피스트가 활동했던 그 시기, 중국의 제자백가와 같이 어떤 주류를 이루는 논리가 없었던 때에 어떤 기준으로 그들을 궤변론자라고 할 수 있었을까? 결국 궤변론자라는 말은 그 때를 지나서 소피스트가 쇠퇴할 무렵, 즉 주도세력이 등장하는 시기에 지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소피스트를 궤변론자로 보지 않고 주류에서 비주류로 밀려난,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상대적 진리를 강조했으며 또한 교육에 있어서는 논변술 등 실전에서 쓸 수 있는 실용적 학문을 추구한 소피스트로 보려고 한다. 결코 궤변론자가 아닌...
그런 상대주의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역사적으로 폄하된 인물들이 비단 그리스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도 이와 비슷한 인물이 있었다. 그리스에서 최초로 철학자가 등장하는 B.C. 5-6세기 즈음 중국도 그리스와 똑같인 논쟁으로 뒤끓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중국에서는 논변이 뛰어난 자를 `변자(辯者)`라고 불렀다. 이들 역시 역사속에서 배척당하고, 멸시당하고 있다. 중국의 변자의 예를 들자면 등석(鄧析)이라는 인물을 들 수 있다. 그는 공자보다도 대략 30년 정도 앞선, B.C. 6세기경의 인물로 정(鄭)나라의 대부였다. 그에 관해서는 『여씨춘추(呂氏春秋)』 「이위(離謂)」편에 나오는 다음의 일화가 있다.
정(鄭)나라에서 부자 한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주검을 건졌다. 그 부자의 유족들이 주검을 사겠다고 나섰는데, 주검을 건진 사람이 너무 많은 돈을 요구했다. 유족들은 등석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