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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친일청산이라는 역사적과제를 안고 살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친일청산의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1948년에 있었던 제헌국회(制憲國會)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구성과 친일파 청산 활동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반민특위에 의해 친일파로 지목된 인물 중 나의 마음을 씁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1949년 체포된 여암 최린이다. 그의 자세한 행적을 살펴보면 더욱 가슴이 아파오는데 그 이유는 그가 구한말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동학의 후신 천도교(天道敎)를 대표하는 종교지도자이자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한 33인 중 한사람인 민족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들은 일제시기의 대표적인 민족지도자에서 친일로의 변절이라는 극과 극을 오갔던 그의 삶을 쉽게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 보고서에서는 변절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1920년대부터 1930년대의 최린의 삶과 그의 생각, 그리고 당시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당대 지식인인 그가 왜 일제의 지배정책에 동화되어 변절하여 친일행각을 벌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