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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반대에 대한 주기철의 행동은 그가 부산 초량교회에 부임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초량교회에 담임목사로 있던 1931년 초여름 경남노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사참배 반대안을 결의하였다. 이때는 신사참배가 공식적으로 강요되기 이전이었음에도 신사참배 반대안을 결의한 것은 경남노회가 앞으로 제기될 문제를 예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김요나에 의하면 주기철은 1929년 신사참배 반대 헌의안을 당시 노회장인 함태영(咸台榮) 목사에게 제출하였다고 한다. 경남노회가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결정을 했을 때 일본인이 경영하던 부산일보는 이 사실을 보도하였고, “완미(頑迷)한 양귀(洋鬼), 끝끝내 신사참배 거부”라는 제하의 사설을 게제하기도 했다. 주기철이 이 결의의 주동 인물로 알려지자, 이때부터 그는 일제의 관찰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