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아! 우리 선조(先祖 윤 고산)께서 만년에 서식(栖息)하시던 곳과 세상을 등지고 소요하시던 유적을, 다만 가정에 전해 오는 말과 마을 노인들이 들려주던 전설에 의거할 뿐이었는데, 육지와 바다가 서로 막히고, 선인과 속인의 길이 끊어져 평소 꿈속에서 그리워한지 20여 년이나 되었다. 지금 다행히 순풍을 만나 진경(眞境)을 밟을 수 있었다. 강산은 변하지 않고 대지(臺池)도 어렴풋이 남아 있으며, 기울어진 난간과 정자에는 선조의 손때가 남아 있어, 이를 만져보고 살펴보며 선조의 발자취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살필 수 있으니 1백년간 추모해 오던 성심을 위로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멀어짐에 따라 부탁한 것이 적임이 아니어서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다.
우리 선조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지금 78년이 흘렀는데, 오가시던 길도 없어지고 초목만이 우거져 있으며, 남아 있는 대(臺)와 정자는 무민당(无悶堂)·서와(西窩)·곡수당(曲水堂)·세연정(洗然亭) 뿐이고, 낙서재·동와·석실은 터는 완연하나, 썩은 기둥과 무너진 담벽들이 거친 풀밭 위에 내버려져 있으며, 서재·연정(蓮亭)·정성암(靜成庵) 등은 다만 무성한 소나무들의 사이에서 남긴 터전을 짐작할 뿐이었다.
그 고요한 산골짜기, 물소리·소나무 소리와 아름다운 사석(沙石), 우거진 수목은 비록 행인 과객이라도 고금의 일을 회상할 때 초연(悄然)히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들인데, 하물며 우리 미약한 후손임에랴. 선조를 추모하며 슬픈 눈물이 줄줄 쏟아지니 이번 유람으로 와서 상심하는 것이 도리어 평소 꿈속에서 그리워하니만도 못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곳을 지키고 살고 있는 사람은 이 동숙(李東淑)군으로 학관(學官)의 사위이다. 학관의 아들 일가인 청계(淸溪)노인도 같이 이곳을 찾게 됨으로 해서 선조의 유적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옛날에 들은 말을 나에게 들려주고 또 그의 아버지가 추모하던 성심과 수호하던 노고에 대해서도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