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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영남지방의 행정,사법,군무를 통할하는 명실상부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근대> 대구는 갑오개혁(1894년) 때까지 경상도 감영 소재지로서 영남지방의 중추기능을 계속하여 수행해 왔고, 1895년 도(道)제도는 폐지되고 중앙에서 전국 23부(경상도:대구부, 안동부, 진주부, 동래부)를 바로 관할하게 되어 대구부 관할의 대구군으로 개칭되었으나 부청 소재지로서 그 관할구역과 지위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1914년에는 다시 부제를 실시했으나 시가지 일대만 대구부로 독립하였고 나머지 지역은 달성군으로 편제되었습니다. 일제의 침입이 시작되면서 대구는 항일저항운동의 거점으로서의 역할 수행과 근대적 교육을 통한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한 것이었다. 1907년에는 대구의 서상돈, 김광제 등이 중심이 되어 일제의 침략으로 기울어져 가는 국권을 금연, 금주, 절미로 되찾으려는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여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1915년 서상일 등은 영남지역의 독립투사들과 함께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는데, 이 단체는 3.1만세운동에서 대구지역 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1927년에는 신간회 대구지회가 조직되어 항일투쟁을 계속하였으며, 1930년대 이후에는 학생들의 비밀결사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민족항쟁의 본거지로서 그 모습을 뚜렷이 나타냈었습니다.
<현대> 1945년 광복 이후 대구는 해외 귀환 동포의 정착과 월남 피난민들의 유입으로 인하여 급격한 인구증가가 이루어져 대도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49년에는 대구시로 개칭되었으며 1950년 6.25 동란시에는 낙동강 방어작전의 최후 보루도시로 민주주의를 지친 역사에 길이 남을 대구전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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