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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는 지금도 죽도, 울릉전도는 울릉도와 이에 부속된 섬과 암초의 통칭이며 석도는 독도를 가리킨다. 석도를 훈독(訓讀)하면 독섬 혹은 돌섬이 되는데, 지금도 울릉도민들은 독도를 독섬 혹은 돌섬이라 부르고 있다. 1906년(광무 10) 4월초 울도군수 심흥택(深興澤)의 보고서에 본군소속 독도가 재어외양(在於外洋) 100여리에 이삿더니… 운운하고 있는데 독도는 독섬, 즉 석도에서 차음(借音)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칙령 제41호는 대한제국 정부가 독도를 그 판도로 재확인한 것을 의미한다.
일본 메이지 정부도 대한제국이 칙령 제41호를 반포하기 이전부터 량코시마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러시아와 전쟁중인 1905년 2월 돌연 량코시마를 다케시마로 명명,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로 그 영토를 편입시켰다. 그것은 일본의 국운을 걸었다고 하는 동해해전(東海海戰)을 얼마 앞둔 시기로 대(對)러시아 전쟁 수행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영토편입 고시절차가 비밀스러웠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국측이 일본의 독도영토 편입을 알게 된 것은 1906년 4월초였다. 참정대신(參政大臣) 박제순(朴薺純)은 이해 5월 20일자 지령 제3호를 통하여 독도의 일본영토 편입을 부인하였다. 그러나 그뒤의 한일 양국간 독도영유권과 관련된 교섭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이에 대하여는 한국 정부의 외교권이 1905년 11월부터 일본에 접수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5. 독도를 둘러싼 해상 영유권 분쟁과 우리의 과제
한국 정부는 1952년 1월 18일자로 인접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 이른바 평화선을 선포하였다. 그 안에는 현재의 한국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로 되어 있는 독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같은 해 1월 28일자로 다케시마(竹島), 즉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외교문서를 한국 정부에 보내옴으로써 독도문제가 한일 양국간의 외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