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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유럽의 교전국들에 대한 채권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으며, 전쟁이 끝났을 때는 유럽 국가들의 대미 부채는 100억 달러를 상회하였다. 미국은 전시 중 연합국에 빌려준 이 방대한 자금을 전채(war debts)로 생각하여 상환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전후 영국과 프랑스는 이 전채는 모두 미국에서 사용되어 미국의 전시 경제의 번영에 크게 이바지했으므로 말소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1923년 5월부터 1926년 5월까지 유럽의 13개 채무 국가들과 개별적으로 협상하여 전채의 지불에 관한 협정을 마련하였다. 미국은 전채의 상환 기간을 62년으로 연장하고 이자율을 상당히 낮게 책정하여 전채의 규모를 크게 삭감하였다. 그러나 전채 문제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전채 문제는 독일이 연합국에 지불해야 할 배상금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배상 문제의 원활한 해결 없이는 궁극적인 해결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연합국들, 특히 프랑스는 독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 그 돈으로 미국에 진 전채를 상환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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