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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총리지명과 신민당의 창당
①분당론과 총리 지명
1960년 8월 4일 구파쪽은 성명을 통해 분당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구파가 신파보다 당 선자가 많아 분당을 하더라도 제 1당이 되며 대통령과 국무총리직을 차지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예측하였다. 그러나 신파측은 국무총리직을 장면으로 당선시킨다는 전략을 세우 고 무소속 의원을 포섭하므로써 구파측 국무총리 김도연을 국회 인준표결에서 부결(가 111, 부 112)시키고 장면을 국회 인준(가 117, 부 107)에서 성공시켰다. 이로써 장면정부 가 탄생되고 신파는 조각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구파는 제 1야당으로써의 발족을 꾀하였으나, 여론에 밀려 거국 내각을 구성하여 신파 5석, 구파 5석, 무소속 2석 으로 각료직을 안배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각료직 배분 문제를 두고 양파는 의견 차이 를 보임으로써 8월 23일 신파측의 일방적인 각료 명단을 발표하게 된다.
이날 발표된 장면 정부의 내각은 거국내각이라기보다는 민주당 신파내각이었고, 신파 중에서도 13인소위원회 중심이었다. 이에 구파는 물론 신파의 소장파와의 알력이 커져 …
참고문헌
장면정부하의 정당구도분석. 심지연. 서울대학교한국정치연구소,
1999년(제8.9 합병호)
제 2공화국헌법의 성립과 그 전개 : 그 헌법사적 평가의 한 시도.
박성빈. 중앙대학교 ,1991
비교정치론. 한배호. 법문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