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6. 악극의 성황
악극은 대사와 동작과 노래와 무용과 경음악이 조화된 연극이다. 막간을 하기 위해 취성좌에 가요부와 음악부를 두었는데, 이것이 악극의 토대를 마련했다. 악극은 막간에서 토대를 쌓아 여타의 신파조극이나 대중극과 공존하면서 발전했다.
1930년대 악극은 삼천가극단과 조선연극사를 비롯하여, 배구자악극단, 연극시장, 태양극장, 중외극장, 낭랑좌, 화랑악극단, 도원경 등이 주도했다. 1940년대는 악극의 전성기였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조선인의 말과 글, 교육, 역사, 언론, 풍속, 전통, 연예, 통신 등에 대한 제약과 탄압이 한층 강화되자 조선어로는 표현하고 깊은 내용을 솔직히 드러낼 수 없었다. 40년대 악극은 이런 시대성을 온상으로 성장했다. 50년대 중반부터 국산영화 제작 붐을 타고 악극계의 주역들은 모두 영화계로 진출했다.
※ 악극의 의의
악극은 연극의 표현수단으로써 음악을 새롭게 활용하고, 동시에 대중이 가장 선호하는 음악극을 통해 즐거움과 위안을 제공한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악극이 내포한 음악극으로서의 취약성과 새 시대가 요청하는 음악적 창의성의 결여가 한계성이다.
7. 프로극의 발아와 성장
양식적으로 프로극은 대중에게 혁명이념을 선전·주입시키며, 대중을 선동하고 실천적인 행동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무대언어와 연기 및 무대 예술적인 조작을 일삼은데 특징이 있다. 연기는 과감한 행위와 과장된 동작, 때로는 낭만적인 서정성을 활용했다.
프로극은 30년대 전반기 일제의 탄압과 카프회원들의 검거사건을 계기로 표면적으로는 연극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투쟁이 일제하에도 지하조직을 통해서 꾸준히 진행되어 왔듯이, 프로극의 이념과 방법 역시 이면적으로 잔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