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우선 병무성시대에는 명치 초기에 군무관(후의 병부성)의 지휘하에 「번(藩)」에서 차출된 무사들로 번병, 부병이 조직되어 「강호(동경부)」의 치안을 담당하였으며, 각 지방에서도 부병, 번병을 조직하여 치안을 담당하였다. 1871년에는 폐번치현조치에 따라 모든 번이 폐지되고 현이 설치되어 부병이나 번병은 그 존재의 기반이 상실되었다.
사법성시대에는 동경부에 나졸 3000인이 창설(1871년 10월)되면서 근대적 경찰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나졸은 1872년 8월부터 사법성의 관할이 이관되었다. 이때, 「경보료직제장정」이라는 경찰의 조직과 임무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었는데, 이 장정은 행정경찰로서의 경찰업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사법경찰업무는 「사법직무정제」에 의거 검사가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경보료직제작정」은 일종의 자치경찰제적인 민설민급의 번인제도를 규정하고 있어, 이 시기에는 관설관급의 경시·경부, 관설민급의 순사와 함께 세 가지 형태가 병존하고 있었다. 지방에서는 「현치조례」가 제정되어 지방 경라에 관한 규정을 두었으며, 이로써 전국통일의 경찰조직으로 정비되어 갔다.
내무성시대에는 1872년 10월부터 사법성의 대경시였던 천로이량이 약 1년간 프랑스 등 유럽대륙의 경찰을 시찰하고 경찰제도에 관한 조사보고서를 제출하였는데 이 때 천로이량의 건의에 따라 1873년 11월 내무성이 설치되었다. 사법성의 경보료를 1874년 1월에 내무성으로 이관하였으며, 「경보료직제」를 통하여 사회의 안전과 질서에 대한 장해를 사전에 방지하는 행정경찰업무를 경보료의 중심업무로 규정하였다. 1874년 1월 내무성의 관할하에 「동경경시청」이 창설되었으며, 종래의 나졸은 순사가 되고, 또한 자치경찰제적인 번인제도도 천로이량의 건의에 따라 폐지됨으로써 자치경찰제적인 요소가 완전히 일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