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영어는 우리 나라의 모국어도 아니고 국가공용어도 아니다. Kachru의 분류에 따르면 우리 나라는 ‘Expanding Circle’에 속하는 국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영어를 ‘외국어’로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국제어’로서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영어를 ‘외국어’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영어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들, 이를테면 영국, 미국, 캐나다와 같은 나라들의 언어이고, 따라서 ‘올바른’ 영어를 쓰는 원어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반면에 영어를 ‘국제어’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영어는 몇몇 나라의 전유물이 아닌 세계인들의 공유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원어민’과 ‘표준영어’라는 개념을 부정하고, 비원어민들 간의 교류를 위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의 영어의 기능을 강조하는 것이다. 종래에는 비영어권 국가들에서 영어는 ‘외국어’로서 받아들여져 왔지만, 국가들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이에 따라 영어의 변종이 많이 생겨나면서 영어를 ‘국제어’로서 받아들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나는 우리의 영어교육에서 영어를 ‘국제어’로 받아들이자는 입장에 찬성한다.
물론 ‘표준영어’라는 개념을 부정하고 영어의 다양한 변종들을 인정할 때 실제 교육 현장에서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은 적지 않을 것이다. 모국어는 아니지만 영어를 국가공용어로 쓰는 나라들에서는 그들 나라들에 토착화된 영어의 변종을 교육의 모델로 삼으면 되겠지만(Kachru 1985), 우리 나라와 같이 영어가 모국어도, 국가공용어도 아닌 Expanding Circle에 속한 나라들에서는 과연 어떤 영어의 변종을 교육의 모델로 삼아야 할…
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한국에서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원어민’의 영어 실력을 갖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가 그들에게 무조건적 권위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어도 영어의 한 변종으로 생각한다면, 위에서 말한 국내외적 힘의 불균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어떤 변종을 영어 교육의 모델로 삼아야 할지, 그리고 영어의 변종들을 인정할 때 야기되는 영어의 상호 이해가능성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 황적륜은 듣기, 읽기와 같은 인식기능을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변종에 접하게 하고, 말하기, 쓰기와 같은 발표기능을 위해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변종을 학습목표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물론 가장 널리 쓰이는 변종이란 현 상황에서는 미국 영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미국 영어를 ‘표준 언어’로 인정하는 것과 가장 널리 쓰이는 ‘변종’으로 인정하는 것 사이에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자에는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이 배제되어 있고 여러 변종 간에는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그저 양적인 차이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영어의 상호 이해가능성에 대해서 Campbell 등(1983)은 영어의 변이형에 따른 오해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영어 ‘원어민(물론 영어를 ‘세계어’로 인정할 때 원어민이라는 용어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과 비원어민 화자들 모두 의사소통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영어를 ‘외국어’로 인정한다면 ‘비원어민’ 화자들이 일방적으로 영어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어를 ‘세계어’로 인정한다면 Campbell 등이 말한 것처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쌍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도 자신의 영어가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