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광작농민의 등장과 농촌분화
이양법과 못자리의 보급으로 이모작이 시행되어 곡물생산에 증대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에 수리시설도 함께 발달하여 토지의 수확고 증진을 촉진하였다. 이양법은 농민의 노동부담을 줄여 한사람이 경작할 수 있는 토지의 양을 증대시켰으며, 단위 토지당 농작물의 양은 두배이상으로 늘었으며, 이에 잉여로 발생한 농작물은 상품으로써 시장에 팔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밭농사가 밭고랑과 이랑을 이용하여 발달하면서 부농이 생겨났다.
부농은 평민지주로 농작물과 밭에서 생산한 특수한 재배물(인삼,담배,목화)로 상품경제로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들은 일정한 양의 곡식을 바치고 성명을 기재하지 않은 관직수여증인 공명첩으로 양반신분으로 상승하였으며, 이에 반하여 정권에서 소외된 양반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이는 조선사회의 신분질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2. 상품·화폐경제의 진전
농업 생산력의 증대와 조세의 전세화 및 금납화는 상품·시장경제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또한 인구가 증가하고 농민의 계층분화가 심화되어 가는 속에서 비농어인구의 도시유입이 현저해짐으로써 상업은 더욱 발달하였다. 상업활동의 중심이 된 것은 대동법의 실시에 따라 나타난 공인이었다. 이들은 어용상인이었고, 도매상인인 도고로 성장하였다. 즉 지방장시의 객주·여각들이 도고로 발전하여 전국저인 상업망을 개척하였으며, 특히 물산의 집산지나 유통의 중심지 등 상업활동이 유리한 지역의 상인들도 종전의 성업기반을 전국으로 확장시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