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다만 어법이 다릅니다. 즉 하나는 무조성의 어법으로 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조성의 어법으로 되어있습니다. 때문에 상부구조의 원리는 동일하지만 하부구조의 원리가 다릅니다. 조성이 없기 때문에 쉔베르크의 재료들은 동기처럼 싣고 운반할 화성/조성이 없습니다. 조성음악에서는 동기들이 조성과 화성의 변화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일 수 있었지만 쉔베르크의 재료(즉 작곡가에 의하여 상상된)들은 변용된 그 스스로의 모습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고전주의의 동기보다 휠씬 빠른 속도로 발전, 진화해 갑니다. 그 발전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우리는 고전주의의 동기들에 의하여 인도될 때 보다 더 주의 깊게 추적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매우 감상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쉔베르크의 음악은 예상되는 길을 크게 어기지 않고 따라가는 바로크 음악이나 충분히 전후좌우를 살피면서 그 투명한 구조를 마음 속에 담아 둘 수 있는 고전음악, 예기치 않은 변화들이 있지만 대체로 청자의 감정 기복을 무시하지 않는 낭만주의 음악과는 다른 감상 태도를 요구합니다. 즉 자신의 음악경험능력을 총동원하여 그 음악의 변화를 잡아내려는 노력이 요청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의 채널을 열어놓고 마치 샤워를 하듯이 음악의 분위기에 잠기기만 하려는 청자에게 그의 음악은 끔직한 것이 됩니다. 그 음악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는 음악이며 대결을 요청하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쉔베르크 당시의 청중들에게는 어땠겠습니까? 그의 음악회에서의 소란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음악의 원리는 고전주의적인데 왜 우리는 그의 음악에 대하여 때로 표현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설명하기 쉬운 대답은 아닙니다. 보통 쉔베르크에 있어서 표현주의의 시기는 조성음악의 시기가 끝나고 자유로운 무조성의 음악을…
그런데 그 음악의 원리는 고전주의적인데 왜 우리는 그의 음악에 대하여 때로 표현주의라는 말을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