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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급작스런 히로시마, 나가사끼 원폭투하 결정으로 날벼락처럼 해방이 다가 온 한국의 봄은 치밀한 준비가 없었던 우리였기 때문에 좋은일 보다는 힘든일이 많았다. 이당시는 이미 소련과 일본이 한반도를 38도선을 기준으로 분할해서 소 위 해방이라는것을 행하였기 때문에 좌익세력의 외교정책-대륙외교·북방외교-과 우익세력의 외교정책-해양외교·남방외교-이 우세하였다. 잘알려져있는 바와같이 이들두개의 외교노선은 각각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진영의 주도적 국가에 일방적으로 기운 편향적인 외교노선이었다. 한반도에서 두세력중에 한세력만을 택한다는 것은 필시 독립과는 거리가 먼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당시 이러한 외교 정책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한세력에 편향된 외교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좌우의 이데올로기적 논쟁이 계속되는 동안 약소국외교의 정석이라고 할수있는 등거리외교를 주장한 세력이 있었으니 우리 는 그들을 중간파라 부른다.
참고문헌
Ⅴ. 참고문헌
국제정치학, 박준영, 박영사, 1994
한국 외교사 연구, 김용구, 나남, 1996
국제기구와 한국외교, 윤영관外, 민음사, 1996
한국외교정책의 이상과 현실, 이호재, 법문사, 2000